"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잠언 26:4]

흔히, 믿지 않는 영혼 구원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라 말하지만... 기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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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9. Do we have early testimony about Jesus? (pp221-249)

1. 비기독교인에 의해 기록된 저술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AD 93년 경 쓰여진 Flavius Josephus (AD 37-100)의 역사책 [Antiquities of the Jews] 18권 3장 3권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빌라도의 시대에,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동은 선하고 덕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유대인과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십자가 처형 3일 후에 예수가 그들에게 나타났고 예수가 살아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자세히 열거해 온 이적에 대한 그 메시야였다.’
요세푸스의 역사책에서 예수님의 언급이 이것만은 아니었다. 요세푸스는 다른 장에서 새 제사장이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어떻게 죽였는 지도 기록하고 있다.
‘…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를 데리고 왔다. 그들은 율법을 어긴 죄로 기소되었고, 돌에 맞아 처형당하도록 데려갔다’

그럼 얼마나 많은 비기독교인 역사가들이 예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가? 요세푸스를 포함하여, 10명의 비기독교인 역사가들이 예수님에 대해 쓴 초기 기록들이 존재하며 이들 모두 예수님 죽은 후 15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 반면 동일한 150년 동안 로마 황제 시저Caesar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비기독교인 역사가들의 기록으로는 9명의 저술이 존재한다. 기독교인의 저술까지 합하면,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43권인 반면, 시저에 대한 기록은 10권에 불과하다. 비기독교인의 저술들 중, Celsus, Tacitus, 그리고 유대인 탈무드는 반기독교적 저술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저술들은 목격자들의 진술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초기 반기독교적, 그리고 기독교 저술들로부터 성경과 놀랄만큼 일치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1.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Caesar의 시대에 예수가 살았다.
2. 그는 덕있는 삶을 살았다.
3. 그는 이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4. 그는 야고보라는 이름의 형제가 있었다.
5. 그는 메시야로 불리워졌다.
6. 그는 빌라도 통치 하에 십자가형을 당했다.
7. 그는 유대인 유월절 전날에 십자가형을 당했다.
8. 그가 죽던 날 암흑과 지진이 있었다.
9. 그의 제자들은 그가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고 믿었다.
10. 그의 제자들은 믿음을 위해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11. 기독교는 로마까지 신속하게 퍼졌다.
12. 그의 제자들은 로마의 신들을 부정하고, 예수를 신으로 경배했다.

그럼, 이제 신약이 실제 일어난 역사에 대한 기록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할 필요가 있다: (1) 초기에 쓰여진 성경 원본에 대해 정확한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가? (9장) (2) 그 문서들의 내용이 사실인가? (10,11장).

2. 우리는 정확한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신약 사건의 독립적인 목격자였고, 그들의 일부 목격자들이 자신들의 목격을 글로 남겼다. 신약은 한 명에 의해 쓰인 한 권의 문서가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점에 9명에 의해 쓰여진 27권의 다른 문서들이다. 그러나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는 복사본만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복사본만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원본의 내용이 어떤지 알 수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고대 문서들은 현재 원본이 없으며 존재하는 사본들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원본이 쓰여진 시점으로부터 가능한 짧은 기간에 복사된 사본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이다. 신약성경은 이 기준에서 볼 때 극도로 양호하다. 현존하는 어떤 다른 고대 문서들보다도 많은 사본이 존재한다. 거의 5,700권의 그리스어 사본이 존재하며, 9,000권 이상의 다른 언어로 쓰여진 사본이 존재한다. 즉, 거의 15,000권의 사본이 존재한다. 고대 문서들 중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본을 갖는 것이 호머의 일리아드인데, 단지 643 권의 사본을 갖는다. 그 사본들이 얼마나 일찍 복사되었는가. 이 점에서도 신약 성경은 평균 25년으로, 원본과 사본 간에 가장 짧은 시간 간격을 갖는다. 성경 다음이 호머의 일리아드로 원본과 사본 간의 시간 간격은 평균500년이다. 더우기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단지 몇 년 후에 쓰여졌다.

그럼 이러한 사본들을 통해 원본이 어떻게 재구성되는가? 교차 checking과 비교를 통해 아주 높은 정확도로 재건될 수 있다. 그럼 회의론자들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신약이 정말 신의 말씀이라면, 왜 하나님은 원본을 보존시키지 않았는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몇 가지 가능성 중 하나는, 신의 말씀이 원본보다는 사본을 통해 더 잘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원본이 누군가의 소유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그 사람이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본들이 조각 조각 널리 퍼져 있다면 어떤 한 명에 의해 내용이 변조될 가능성은 없다. 역설적이지만, 원본을 가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보존하는 것일 수 있다.

3. 신약의 신뢰도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들
(1) 역사는 알려질 수 없다?
이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최초의 생명은 무기화합물에서 자연 발생했고 모든 생명들은 지적인 개입없이 첫 번째 생명으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화론 그룹에서 나왔다. 그들은 생명의 역사는 목격자나 이를 보강하는 다른 사건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목격자와 보강 사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확실히 부조리하다. 만약 우리가 역사를 알 수 없다면, 회의론자들은 기독교가 틀렸다고 주장할 수 없다. 기독교가 틀렸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옳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2) 신약 문서들은 기적을 포함한다?
회의론자들은 신약문서들이 기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논지를 편다. 이는 8장에서 이미 논의했다.

(3) 신약의 저자들은 왜곡되었다?
데이빗 흄은 \“신약이 개종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인데 어떻게 믿을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신약 저자들이 개종자들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과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개종자들이 쓴 글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바로 \“왜 그들이 개종하였는가?” 이다. 그들은 왜 평생 잘 믿어오던 종교적 전통을 그렇게 갑자기 버리고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게 되었는가? 어떤 회의론자들은 ‘세상에 대한 권력 추구 때문’ 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를 전하는 것에 무슨 권력이 주어지는가? 권력은 불구하고, 고문과, 억압, 죽음을 당했다. 나는 회의론자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겠다. \“부활 사건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약 저자들로 하여금 예수 사건을 거짓으로 꾸미게 할 만한 동기가 무엇인가?” 실제로, 신약 저자들은 유대교를 버리고 새 종교를 만들어 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4) 개종된 사람들은 객관적이지 않다?
이 주장은 난센스다. 우리는 중립적이지 않아도 객관적일 수 있다. 즉, 중립성과 객관성의 구분은 정말 중요하다. 너무나 종종 신약 문서들이 편향되었고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나 이는 아이러니하다. 왜나하면 이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신약 성서는 얼마나 일찍 기록된 것인가?
모든 신약 문헌들은 AD 10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 대부분은 A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 이는 AD 70년에 예루살렘과 헤롯 성전의 파괴 사건으로 추정가능하다. 그리고 다수의 신약성경이 AD 62이전에 기록되었다. 사도 바울은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죽었는데, 네로의 통치는 AD 68년에 끝난다. 만약 사도행전이 AD 68이후에 기록되었다면 사도 바울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또한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으로부터 야고보가 AD 62이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AD 62이전에 기록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보면 누가복음은 사도행전 이전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은 누가복음 이전에 기록되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몇 년 이내에 기록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AD 30대에 기록). 즉, 몇몇 신약문서들은 AD 30년대, 40년대 그리고 50년대에 기록되었다. 사도 바울은 14명의 목격자 (12명의 제자들과 야고보, 그리고 사도 바울 자신)들의 이름을 제시한다. 만약 부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왜 사도 바울이 목격자들의 명단을 기록했겠는가? 그 기록이 거짓이라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독자들로부터 당장 모든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어떤 회의론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15~40년이라는 시간 간격도 목격자들의 증언이 믿을만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긴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15~40년 후인 신약성서가 쓰여질 당시에 목격자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목격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신화가 역사적 사실로 유포되지 않는다. 두 세대(약 15~40년)는 역사적 사실을 신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짧다. 그 두 세대동안 목격자들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잘못을 수정하기 위해 살아 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유태인 대학살에 대해 발견되고 있다. 21세기 초에 들어와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자들은 왜 \“지금” 그러한 수정을 시도하는가? 그 이유는 대부분의 목격자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을 이미 문서화했기 때문에 수정론자들의 거짓말은 아직 사실로 유포되지는 못 한다. 예수 사건에 대해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5. 그럼 왜 더 일찍 쓰여지지 않았는가?
회의론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다 좋다. 그래도 신약성경은 기대하는 것 만큼 일찍 기록되지는 않았다. 왜 그들은 수 십년 후에 기록하였는가? 많은 가능한 이유들이 있다.

(1) 신약 저자들은 다수의 주민들이 문맹인 문화 속에 살고 있었다. 따라서 1세기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필요에 의해 강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신성한 전통을 성실하게 암기하는 법을 훈련받았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암기하였을 것이다.

(2) 신약 저자들은 에수님이 그들의 일생동안 곧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즉시 기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으 나이가 들면서, 그들의 관찰을 문서로 기록하여 남기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3) 기독교가 고대 근동 지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기록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즉, 시간과 거리는 신약저자들로 하여금 저술하게 만들었다.
만약 사본이AD 50년 경 기록된 것이라면 원본은 더 일찍 만들어졌을 것이다.

6. 그래도, 회의론자들은 이렇게 말할수 있다. 500여명이 동시에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했다면, 그들로부터 남겨진 증언의 기록이 더 있어야 되지 않나?
이는 비이성적인 기대이다. 첫째,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은 구두 문화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둘째, 혹 목격자 전원이 문맹이 아닐지라 해도 500명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가? 지금 911사건의 목격자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격담을 기사나 책으로 남겼는가? 세째, 혹, 500명 모두가 자신의 목격을 기록으로 남겼을 지라도, 왜 회의론자들은 그 기록들이 2,000년 동안 살아남았을 것이라 기대하는가? 네째, 우리는 500명의 목격자 들 중 다수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들이 자신의 목격을 신약성경으로 남겼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역사성을 확립하기에 충분하다.

9 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신약 원본 문서들의 정확한 복사본을 가지고 있다; 둘째, 신약 문서들은 충분히 일찍 기록되었다. 그럼 이제 신약성서의 역사성을 증명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신약문서들이 정말 목격자들의 증언인가? (10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