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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도서실에 있습니다>



배려/ 한상복 지음


일찌기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통제 안된 자연 상태의 인간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자비한 투쟁’의 마당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또한 다윈 이래 만연하게된 진화론적 세계관은 생존 경쟁과 적응과 도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경쟁에서 지는 사람은 도태되고 적응하여 이기는 사람만이 승자로 남는 비정한 정글의 법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는 유명한 팝송에서도 마치 무슨 진리인 것처럼[요즘 세상에서는 사실 진리이기도 하다] 노래 되기도 한다.
 

승자가 다 갖는 거예요.

패자는 승자 옆에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죠.

그게 운명인걸요.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 그룹 ABBA의 The winner takes it all 중에서 –

 

조금 과장된 말이 되기는 하겠지만, 이러한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비정한 도시, 비열한 거리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은 모두 각자가 완전 군장을 한 투사가 되어 각자가 만인에 대한 투쟁의 대열에 나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가 지거나 죽어야 내가 이기거나 산다”는 명제를 뼈 속 깊이까지 새기면서….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가 이기고 무찔러야 할 상대인 “남”에게 동정심을 갖는다거나, 남의 기분이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추어 어떤 “배려”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전투력을 떨어뜨리고 패배를 불러와 자신을 도태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우리의 생각 가운데에서는 이를 쉽게 인정하는 것에 저항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오랜 동안 인생이란 생존 경쟁의 정글에서 생존해 온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능적으로 이를 체득해 온 것 같다. 자신의 패배에 대해 빨리 추스리고 회복하여 견디는 방법, 오래 부러워 하지 않기, 남의 패배에 대해 오래 동정하지 않는 방법…… 흔히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남에게 치명상을 입혀야 하는 상황에서는 과감히 행동에 옮기는 방법, 그리고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잊어버리는 방법 등등.

지난 11월 초에 한국 언론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보도 되었다. 명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30대 연구원이 아내와 어린 두 아들들을 청부 살인하기 위하여 150만원을 지불했다가 사법 당국에 적발되어 구속되었다. 그는 학위 과정이 남보다 조금 늦어졌고 장래가 불투명해지자  가족들을 부양하여야 하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을 없애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들이 그의 지지자요 후원자요 인생의 동반자들이 아니라 그저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고 생존해 나가는데 짐이 되는 존재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처벌에 앞서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이 경우는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우리 모두가 앓으며 신음하고 있는 우리 사회 전체의 병든 환부가 노출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 동안 봉건 사회에서 저개발 국가를 거쳐서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를 건설하다 보니 우리 사회는 어떤 나라의 어떤 사회보다도 더 치열하게 정글의 법칙에 충실할 수 밖에 없었고 보다 심각한 질환의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닐까 한다.

“배려(한상복 지음)”는 이런 우리 사회의 병리학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치유 방안을 제시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지은이는 영문학을 전공한 후에 경제신문사 기자를 거쳐 벤처 사업을 하면서 몸소 체험하기도 하고 취재 중 근거리에서 관찰한 우리 사회의 환부를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소설 “배려”를 통하여 구체화 시켜서 우리 앞에 내어놓는다.


주인공 “위”(위만 바라보는 사람이란 뜻도 있고, 우리 모두(We)란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과장(課長)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입사 7년만에 최연소 차장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승진이 발표되는 날,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 잡힌다. 핵심 부서인 기획실에서 근무하던 그를 회사는 한직이며 곧 해체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제1팀에 발령한 것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에게 상무 이사 “철혈”이 다가와 그를 한직에 발령한 이유를 알려준다. 그에게는, 실적은 어느 정도 올리는 편이지만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회사 분위기를 망치는 1팀 해체를 위한 트로이 목마로서의 특명이 주어진 것이라고…. 회사 전체에 경각심을 주고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서 1팀을 해체하여 팀의 핵심 멤버들을 회사 밖으로 내 몰 명분을 갖기 위한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위”가 투입 된 것이었다.

승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가족을 돌보는 것까지 소홀히 하여, 아내와는 별거 중이고 이혼을 앞 두고 있던 “위”는 동료를 내 몰기 위한 프로젝트에 선발된 것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중에, “위”의 11층의 비밀스러운 존재인 고문실로부터 부름을 받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오스트리아의 소아정신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자폐증의  전형적인 증세인 사회성, 상상력, 커뮤니케이션 세 부분에 장애 가지고 있지만, 보통 자폐아들보다 지능이 높으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거나 교감하는데 서툴러서 남의 정서와 감정과 교감하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을 불쾌하게 행동을 자주 하며, 자기가 흥미있는 일에는 철저하게 몰두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한스 아스퍼거도 지적했듯이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에게서는 이 아스퍼거 증후군의 일부 또는 전부가 나타난다고 한다. 뉴튼이 연구에 몰두하다가 계란을 삶아 먹기 위해 끓는 물에 시계를 넣었다는 일화도 보통은 그의 천재적인 면모라고 생각하지만 정신과적으로 분석하면 병리적인 일면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일과 승리와 생존에 강박적으로 몰입한 채,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의 사람들과 단절되어[본인은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함], 생존과 승리와 쟁취를 위해 몸부림 치는 우리 사회의 직장인들에게 스스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가 아닌지 돌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또한 치유와 공존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급류를 타고 흘러가는 뗏목 위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바쁜 당신에게 이 책과 더불어 “잠시 멈춤”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건 보너스로

 

John Greenleaf Whittier의 시 In School-Days에 보면 한 노인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고향에 돌아와 어린 시절에 다니던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옛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들을 하나하나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에 한 대목…..

 

아주 오랜 옛날

겨울 저녁의 해는 교사의 서편 창문들과

낮은 처마에 달린 고드름들을 비추고 있었다.

 

저녁 햇살은 또한 학교가 파하고

모두가 돌아간 후에도 학교에 남은

금빛 고수머리에

슬픔으로 가득 찬 갈색 눈을 가진 한 소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그녀의 미숙한 호의가 선택한 한 소년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자부심과 그리고 부끄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쉴새없이 발로 눈을 이리저리 쓸면서

어쩔줄 모르고 그렇게 서 있었다.

마찬가지로 소녀도 작은 손으로

푸른 체크 무늬의 앞치마를 계속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소녀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을 때

소년은 어떤 부드러운 손길의 가벼운 어루만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 단어를 맞추어서 미안해.

난 너보다 더 잘하고 싶지 않았어. 왜냐하면…..”

그녀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왜냐하면…. 너도 알잖아. 난 널 사랑해….”

 

백발의 신사에게는 그 다정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 소녀여! 그녀의 무덤에서 풀이 자라기 시작한 게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그는 인생이란 고된 학교를 살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를 앞질러 간 사람들 중에서

그녀처럼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승리와 그의 패배로 인하여

슬퍼했던 사람이 얼마나 적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