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손상이 많은 문둥병환자들 앞에서 한 설교 - 폴 브랜드>


저는 손을 수술하는 외과 의사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늘 그 사람의 손을 봅니다. 손금을 보는 사람들은 손바닥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손을 보고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어디에 못이 박혀있고, 손톱이 어떤가를 보고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손을 사랑합니다.

저는 주님을 만나 뵙고 그분의 손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압니다. 저는 그분의 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그분 손에서 일어났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탄생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인생을 함께 따라가면서 그분의 손을 살펴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먼저, 갓난아기 시절의 주님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작고 연약합니다. 빛을 움켜쥐려고 해 보지만 아무것도 움켜쥐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하나 따로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대부분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을 위해 그분의 무한한 능력을 포기하시고 완전히 무력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분의 뜻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다음은 소년 시절의 예수님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서투룬 솜씨로 붓이나 철필을 쥐고, 히브리어 글자를 써보려고 애를 씁니다. 주님의 손은 다른 사람들의 손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를 힘들게 익혀야 하는 인간의 손이었습니다. 다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야 했습니다. 주님이 배운 몇 가지 지식은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께 가르친 지식이 불완전한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목수가 되신 주님의 손을 생각해 봅니다. 목수이신 주님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저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도 한 때 건축자이자 석공이었거든요. 주님의 손은 거칠고 굳은 못이 박혀있고 손톱은 부러지고,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엄지손가락 몇 번 다치지 않고, 또 톱날에 손을 베이지 않고서야 솜씨 좋은 목공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람은 실수를 거치면서 배워갑니다.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완벽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의 영혼은 완벽하십니다. 아무런 죄도 지으신 것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철저하게 다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완벽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육체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손가락은 수도 없이 찧이고, 베이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설교를 하는 그리스도의 손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손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감동시키는 엄청난 능력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자신의 몸속으로 성령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배나 가슴을 만져 보고도, 환자의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심장의 고동이나 내장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님도 역시 인간의 몸을 만져 보시는 것만으로도 죄악과 범죄, 분노 따위를 감지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주님 자신의 믿음과 용기과 사랑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손을 생각해 봅시다. 한 가운데에 못이 박힌 손을 생각하면 제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픕니다. 그 손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 속에는 힘줄과 신경과 혈관과 근육이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한 가운데에 못이 박히게 되면 그 손은 불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치유의 손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는 주님이 무엇을 겪으려 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그 고통을 당하는 속에서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모습을 몸소 체휼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과 함께 그 가난을 겪으셨고, 피로에 지친 자와 함께 그 피로를 겪으셨으며, 손이 불구가 된 자와 함께 그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 다음은 부활하신 주님의 손입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의 손을 생각하면서 대단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내세의 삶은 완벽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와서 내 손을 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도마에게 주님의 손에 난 못자국 속에 손가락을 넣어 보게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인간으로서의 상처를 계속 지니고 계시길 원했을까요? 주님은 땅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영원히 일깨워 줄 흔적으로 그 상처를 지니고자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그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소망을 계속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그 고통의 흔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폴 브랜드 전기 "하나님의 열 손가락" 중에서....>

폴 브랜드는 1914년 7월 17일 인도 선교사였던 부모의 슬하에서 인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후에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의학을 공부하여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인도로 돌아가서 평생을 문둥병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에 힘썼다. 그는 문둥병으로 인한 사지의 손상이 문둥병균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병원균으로 인한 신경의 마비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환자들이 문둥병이 치유된 후에도 사지를 관리하지 못하여 염증과 부상 등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 혀냈으며, 신경마비로 인하여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환자들을 위한 재활 수술방법을 개발했다.

또한 사회로부터 백안시 당하며 피폐해진 환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고자 환자들의 외모를 회복시키기 위한 수술법 등을 개발하기도 하였으며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평생을 문둥병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2003년 7월 8일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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