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카탄 선교/김석년 선교사님 인터뷰

 
uxmalpyr.jpg
 

<우리 선교팀이 사역하는 Akil 지역 근처의 Uxmal 유적지>

옥합에서는 전도위원장이신 김석년 장로님을 모시고 전도위원회의 계획들과 유카탄 선교에 대해 이야기들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직회가 열리기 전에 잠간 시간을 내신 관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만 선교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옥합 :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본 교회 출석한지 이제 1년이 채 안됩니다. 교회 사정도 잘 모르고 유카탄 선교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질문도 대략 오래 출석하시지 않은 분들의 수준에서 기초적인 질문들을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그럼 먼저… 장로님께서는 본 교회에 출석하신지 몇 년 정도 되셨나요?

김 장로님 : 한 10년 정도된 것 같습니다.

옥합 :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전도위원회에서 일을 하신 것은 몇 년 정도 되십니까?

김 장로님 : 지금까지 전도위원회에를 섬기고 있으니까 10년 쯤 됩니다. 

옥합 : 그러시면 원래 선교나 전도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군요?

김 장로님: 네, 그렇기도 했고요 전도 위원회에 계속 있다보니까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옥합: 지난 1월에 유카탄 의료 선교를 다녀오셨는데요 우리 교회가 유카탄 선교를 몇 년째 해오고 있습니까?

김장로님: 6년입니다. 올해는 1월에는 의료 선교로 6 월에는 여름 성경학교 팀과 의료 선교팀이 함께 할 예정입니다. 

옥합: 그러면 일 년에 두 번씩 가시는 건가요?

김장로님: 아닙니다. 처음에 5 년 동안은 1년에 한 번씩 갔습니다. 작년에는 사정이 있어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옥합: 아, 작년에요. 도미니카를 가셨군요.

김장로님: 예, 작년 여름에 도미니카를 갔었고, 올해 1 월에 유카탄으로, 이번 여름에도 유카탄으로 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옥합: 그러면 처음에 어떤 계기로 우리 교회가 유카탄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김 장로님 : 1905년에 일본 사람들이 영국 회사를 통해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보내는 것처럼 해 가지고 당시에 유카탄에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후손들을 복음화하자 하고 유카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옥합: 그러면 처음에는 유카탄에 있는 한국인 3세, 4세들을 복음화하자고 시작된 것이군요.

김장로님: 네 그렇죠.

옥합: 그러면 유카탄에 한국 선교사님들께서 와 계신 것을 아시고 접촉을 시작하셔서 도움을 드리기 시작하신 것인가요?

김장로님: 네, 거기에 계셨던 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선교 사역에 대하여 간증하여 주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옥합 : 제가 좀 서치를 하다 보니 한국 선교사님들이 유카탄에 그래도 많이 계시는 편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부 한인 후세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교회들이 선교사님들을 파견한 것이군요.

김 장로님 : 그런 면도 있도 또 미국에서 가까우니까 멕시코를 선교지로 한 교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카탄은 멕시코에서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편에 속합니다.   

 

알고 보니 유카탄은 우리에게는 전혀 낯 설기만 한, 그리고 우리와 무관한 땅은 아니었다. 대한제국 말, 만주와 러시아 등지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초의 서방으로의 해외 이민은 1902년 시작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과 1905년에 있었던 멕시코 유카탄 농장으로의 이민이었다. 당시 일본인들도 남미 여러 나라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일본인을 중심으로 한 황인종 유입의 증가를 현지에서 위협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따라서 일본 외무성은 거의 병탄의 마지막 단계에 있던 대한제국을 여러 가지로 압박하여 더이상의 서방 이민이나 이민자들과의 교류를 차단하였다. 따라서 멕시코 이민은 단 한 차례로 끝나고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으로 떠난 1,033명의 한인들은 고국과의 연락이 사실상 두절되어 고스란히 '잊혀지고 버려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처럼 사진 결혼도 가능하지 않았다. 

 

1910년 국권 병탄 후에는 이들은 모두로부터 완전히 버려진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멕시코 정부는 이들의 대한제국 국적을 인정해 주지 않았으며 주 멕시코 일본 공사관은 이들을 자신들의 식민지 백성들로서 대우하려 하자 이들은 조직적으로 이에 항거하였다. 이국 땅에 버려진 그들은 절대로 망국을 인정하지 않고 이국 땅에서의 일본의 지배와 맞서서 싸웠다. 따라서 이들이 해외 항일 독립운동 세력화할 것을 두려워 한 주 멕시코 일본 공사관의 철저한 감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또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군 진영에 섰던 멕시코 정부로부터는 일본인 집단으로 간주되어 차별과 감시를 당하기도 하고 일부는 일정 지역에 강제 소개되어 억류되기도 하였다. 유카탄은 우리 민족사의 아픈 기억의 한 편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한 것이다.

 

 Wherei1.gif


옥합 :
그러면 한인 후손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선교를 시작하신 것인데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선교를 나가면 한인 후손들하고 접촉을 하시고 도움을 드리거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김 장로님 : 저희들은 선교지에서 주로 한국인 선교사님께서 개척하신 개척 교회와 아킬(Akil) 신학교를 중심으로 선교 사역을 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한인 후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연세드신 2세, 3세 노인들을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1년 전, 영국계 멕시코인과 일본 이민회사의 협잡에 의해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사실상 팔려온 1,033명의 한국인 노예들. 옥합이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이들 1,033명 가운데 남자가 702명이고 여자가 135명, 어린 아이가 196명이었다. 독신은 196명, 나머지는 257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자가 태부족인데다가 고국의 여성과의 사진 결혼도 불가능했던 것이 3세들의 혼혈화의 주 원인이었을 것이다. 유카탄 이민자 3세의 90%, 4세의 99%가 혼혈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조상들이 애니깽(용설란)의 가지에 찔리며 채찍에 맞아가며 또한 굶주림에 시달리며 애니깽을 자르는 중노동에 시달리는 하층민의 생활을 했던 것처럼 이들의 후손의 90%는 아직도 하층의 빈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인 후손들이 주로 대도시에 산재해 있고 접촉하기 쉽지 않았던 관계로 현재 우리 교회는 이들이 아닌 마얀족을 선교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계속 말씀을 들어 보자.


2007081500021_0.jpg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

옥합 : 이제 좀 실질적인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이제 미네소타에서 출발하면 유카탄 현지에 어떤 경로로 도착하시는지요? 

김장로님 : 미네소타에서 출발해서 비행기로 유카탄의 메리다에 기착해서 대략 1시간 반에서 2시간 운전하여 현지에 도착합니다. 또는 캔쿤에 기착하여 8 시간 정도 운전하여야 합니다.

옥합 : 그러면 최종 목적지는 좀 큰 도시에 속하나요? 아니면 소도시에 속하나요?

김장로님 : 작은 도시죠.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마얀족이 거주하는 곳은 작은 도시에서도 벋어난 지역입니다.


 

merida.jpg
<우리 선교팀의 기착지인 Merida시 전경, Merida는 "하얀도시"란 뜻> 

유카탄 반도에는 유카탄, 캄페치, 퀴키아나루 등 멕시코의 3개의 주(state)와 과테말라, 벨리스, 온두라스 3개국이 위치하고 있다. 유카탄 반도의 크기는 한반도와 유사하고 멕시코의 3개 주를 합한 면적은 남한과 유사하다고 한다. 유카탄 반도의 멕시코 3개 주 가운데 가장 중앙에 북쪽으로 해안을 끼고 역삼각형으로 위치한 것이 유카탄 주이다. 우리 선교팀의 기착지 메리다(Merida)는 유카탄 반도의 거의 서쪽 끝에 위치한  유카탄 주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백 만명. 메리다는 하얀도시라고도 불리는데 사람들이 흰색 옷을 즐겨입고 집들도 흰색으로 단장된 집들이 많다고 한다. 선교팀은 차량으로 이동하여 메리다 남쪽으로 1시간 정도에 위치한 티쿨(Ticul) 시를 경유하여 최종적으로 아킬 (Akil) 이란 지역에 도착한다.


yucatan-state-500x450.gif 

<우리 선교팀은 비행기로 Merida에 내려서 Ticul을 경유하여 Akil까지 가게 됩니다>

아킬 지역은 유카탄에 산재한 대략 20여  지역의 마야 문명의 유적지의  중에서도 무려 7개의 유적지가 집중해 있는 마야 문명의 핵심적인 지역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욱스말(Uxmal), 카바(kabah), 롤툰(Loltun) 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마야 문명의 유적지이다. 마야 문명을 건설한 마얀족들의 조상들은 남미의 잉카, 아즈텍 등 다른 어떠한 고대 문명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를 가지고 있었다. 고도로 발달한 천문학을 토대로 만든 태양력의 달력은 오늘날과 비교하여 1년에 오차가 겨우 0.0002일 뿐이며 달과 금성의 운행 주기 또한 놀랄 만큼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었다(우리의 첨성대와 유사한 천문대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또한 다른 문명들과는 달리 문자를 개발하여 역사를 기록할 줄 알았고 수학에서는 아라비아 사람들보다 300년 전에 0(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쓰고 있었다. 이러한 고도의 문명을 이룬 사람들이 9세기 경에는 아무런 침략의 흔적도 전쟁의 흔적도 또는 이동의 흔적도 없이 밀림 속의 도시를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야 문명은 아직도 수많은 미스테리를 남기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정말로 농사지을 땅도 없는 척박한 곳에 이러한 문명이 세워졌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팀의 방문지에 아직도 살고 있는 마얀족들은 선조들의 찬란한 문명의 유적이 남겨진 척박한 사바나 가운데서 16세기 후반, 스페인에 의해  정복 당한 후에도, 아직도 그들과 융화되지 않은 채 멕시칸이 아닌 유카테코 또는 마야인으로서 살아 가고 있다. 혼혈이 아닌 순수 인디오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도 바로 이 지역이라고 한다.

 

옥합 : 마얀족들이 하는 주 산업은 무엇인가요? 농사를 짓나요 아니면 노동자로 일 하나요?

김 장로님 : 사실을 일 할 것이 없어요. 수공업도 어느 정도 개발된 지역에만 있습니다. 

옥합 : 농사를 짓나요 주로?

김 장로님 : 그분들이 사는 지역은 정말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어떻게 생활을 이어가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순수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저희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간다고 하더라도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분들의 깨끗한 마음을 배우는 것이죠.

옥합 : 물질적인데 물들지 않고..

김 장로님 : 네, 그럼요. 그러면서도 얼마나 친절하고 이해하려고 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려고 하고 그런 마음들을 배웁니다.

옥합 : 우리 교회에서 가기 전에 물품들을 모집해서 가지고 가셨는데 어떤 것을 주로 가지고 가셨나요?

김 장로님 : 여름 옷가지, 얇은 옷들도 필요하고 슬리퍼, 어린이용 슬리퍼,  학용품, 치약, 칫솔 그리고 의약품들을 많이 가지고 갑니다.

옥합 : 가지고 가신 물품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부족하셨나요?

김 장로님 : 저희들이 최선을 다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들의 본질적인 목적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어린 아이들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VBS)와 의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민(마얀족)들은 의료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옥합 : 그러면 물질적인 것들을 전해는 것보다 자주 찾아가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을 좋겠군요.

김 장로님 : 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기가 쉬운 곳입니다.

옥합 : 멕시코 경제가 더 발전함에 따라 물질적으로 곧 오염될 수도 있겠네요?

김 장로님 : 네 그렇습니다. 복음화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시간이 늦기 전에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에 10년이 지나가면 그분들한테 복음이 쉽게 전해지기는 지금보다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옥합 : 아, 멕시코 경제가 발전하면..

김 장로님 : 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옥합 : 네, 세상적인 데 사람들이 눈을 돌리게 되고…

김 장로님 : 마얀족 한테도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그 전에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옥합 : 그러네요, 정말 시급한 일이군요.

김 장로님 : 네, 시급한 일입니다.

 

멕시코의 경제는 여러 가지 문제도 많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왔고 경제 규모는 놀랍게도 한국과 매우 비슷한 규모까지 자랐다. 한국의 2005년 국민 총생산(GDP)가 7997억 달러로 세계 11위를 차지했었는데 멕시코는 국민 총생산이 7581억 달러로 세계 13위였다. 최근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격고 있지만 멕시코의 성장 잠재력은 무척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옥합 : 그분들의 주 종교는 무엇인가요? 카톨릭인가요?

김 장로님 : 네, 그렇습니다. 카톨릭의 스페인이 마얀 원주민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인들보다는 저희들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백년이 흘렀지만 침략자 백인들에 대한 반감이 아직도 남아있고, 경제적으로도 상위 6%의 백인들이 멕시코 경제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극심한 경제적 불균형이 백인 선교사들이 마얀족을 비롯한 유카탄의 순수 원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피부색이나 외모가 유사한 우리들에 대해서는 정겹게 그들이 마음을 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주님께서 유카탄을 방문하여  마얀족에게 복음으로 전할 사람들로 미국의 많은 백인 교회보다 우리 교회를 택하여 주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옥합 : 현지의 한국 선교사님들은 어떻게 사역을 하고 계시나요?

김장로님 : 대개 한국 선교사님께서 직접 복음을 전하실 수가 없습니다. 마얀족의 경우, 젊은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하는데 나이드신 분들과는 스페인어가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얀말을 하는 신학생을 지원해서 그분들을 세워서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하십니다. 작년까지 우리가 아킬 신학교에서 졸업하도록 지원했던 신학생들이 23명이 됩니다. 그 중에 여섯 명 정도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마누엘이라는 분은 목사 안수를 받으셔서 치아파스에서 두 곳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계십니다. 지금 아킬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5명입니다.  그 중 페르난도 전도사님, 엘리아사 전도사님은 두세 곳의 개척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고 계십니다.  그 지역에서 참 신령한 목사님이 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지금은 한국 선교사님들이 지원하는 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옥합 :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 교회 선교팀들이 현지에 가면 어떤 일들을 하나요?

김장로님 : 저희들이 가면 주로 전도사님들이 시무하시는 교회, 굉장히 열악한 교회들이예요. 이 개척 교회들과 현지 기성 교회들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저희들이 지난 5년 동안 지원한 아킬 지역의 교회들은 마얀족을 위한 교회들이기 때문에 무척 열악합니다.  한번 가셔서 보시면 그 전도사님들이 마얀족이니까 마얀족을 상대로 설교할 때, 또 마얀 어린이들에게 설교할 때, 그 눈빛을 보시면 아세요. 얼마나 진지하게 설교하시는지 알수 있습니다. 

옥합 : 그러면 의료 선교를 가면 진찰도 해주고 약도 주고…

김장로님 : 의사, 간호사와 지원하는 분들이 함께 참여하십니다. 진료 후에은 꼭 복음을 제시합니다. 여름 성경학교와 의료 진료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옥합 : 그러니까 이제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온 의료팀이니까 교회를 통해서 지역 분들이 의료 선교팀을 접촉하고 교회에서는 이를 계기로 지역분들과 더 가까와지고 그것을 계기로 복음을 전하는데 우리가 이를 도와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군요. 또 여름 성경학교는 현지 교회에서 하지 않던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을 많이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군요.

김장로님 :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을 위한 부흥회를 합니다. 그날 저녁에는  돼지를 한 마리 정도를 준비하고 그것을 가지고 마을 식구 약 2백명 정도가 저녁을 함께 합니다. 그분들의 조리 방법으로 구워서 잘게 뜯어서 꼴데아에 싸서 먹습니다.

옥합 : 이제까지 선교에 참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시다면…

김장로님 :  쵸룰 마을에서 부흥회에서는 80 명 이상의 결신자가 있었습니다.

옥합 : 80 명 이상이나요?

김 장로님 : 예,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을 보고 온 선교팀이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옥합 : 그리고 스페인어를 지금 우리 교회에서 같이 공부하시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선교하고 연결해서 단기 선교를 가면 노방전도를 나가기 위해서인가요?

김 장로님 : 그렇죠. 현지의 신학생들과 전도사님들과 함께 조를 짜가지고 나갑니다. 성령님께서 준비하여 주시고 도와 주심을 믿고 저희들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옥합 : 그러면 자원해서 누가 단기 선교에 참여를 하고 싶다고 하면 본인이 부담해야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 되나요?

김 장로님 : 저희들은 비행기 삯 만은 본인 부담으로 이제까지 하고 있습니다.

옥합 : 그게 어느 정도…

김 장로님 : 캥쿤으로 가는 경우에는 350불에서 400정도. 메리다로 가는 경우에는 한 550 불 정도입니다.

옥합 : 그럼 8-9 일 정도 다녀오는데 대략 550불 정도 본인이 준비하면 되네요.

 

 

우리 선교팀은 지난 해까지 캔쿤을 기착지로 하여 현지까지 갔다고 한다. 항공료도 싸고 비행기 편도 더 많아서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이 경우에 공항에 내려서 차를 렌트하여 육로로 여덟 시간을 달려서 최종 목적지 아킬 지역에 도착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행 시간에, 8 시간의 자동차 여행에 여장을 풀고 나면 거의 녹초가 되버리기 쉽상일 것 같다. 비교적 짧은 선교 여행을 가는데 하루 종일 여정에 시달리고 나면 그 다음 날도 정상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메리다에 기착하면 현지까지는 차로 2시간 남짓한 거리니 당일 휴식으로도 체력이 회복될 것 같다. 지금까지 오며 가며 16 시간을 육로에 시달리시면서도 꾿꾿이 계속 다녀오신 우리의 선교팀이 마구마구 자랑스럽다는 그런…

 

옥합 : 그러면 가기 전에 어떤 트레이닝을 하나요 우리 교회에서는…

김 장로님 : VBS 팀일 경우에는 찬양 연습, 스페인어 회화 교육, 유카탄 역사를 배우게 되고 함께 단합하는 훈련도 하고… 6 월의 날씨는 보통은 100도 이상됩니다.

옥합 : 무척 덥군요.

김 장로님 :  네, 최고로 높았을 때는 114도까지 올라가니까 체력이 견딜 수 있도록 함께 단합하는 훈련들도 VBS팀이 많이 했습니다.

옥합 : 그러면 현지에서는 어떤 곳에서 묵게 되나요?

김 장로님 : 지난 5 년 간은 아킬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숙식하였고 2 번은 선교사님 댁에서 숙식하였습니다.

옥합 : 신학교에요?

김 장로님 : 예, 신학교에는 에어콘디션은 없고 교실 바닥에서 저희들이 준비한 매트리스를 깔고  잡니다. 벌레도 많고, 방충망은 있지만 망가진 경우도 많고 고쳐 놓아도 금방 망가지고 그러죠.... 다만 물은 쓸 수가 있어요. 그것도 현지 사정이 만약에 전기가 끊어지면 물을 못쓰게 됩니다.

옥합 : 취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김 장로님 : 저희들이 함께 식사를 만들어 먹지요. 재료는 저희들이 가져가기도 하고 현지에서 구입합니다.  현지인들이 한 분 두 분 도와 주시고 또 거기 계신 선교사님의 사모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십니다.

 

 김장로님과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중간에 제직회에 들어 오시라고 채촉하시러 오신 분도 있었고 시간에 무척 쫒기기도 했지만 무척 좋은 말씀을 많이 들려주셨다. 인터뷰 전에는 옥합 기자도 단기 선교가 무슨 효과가 있다고 계속 돈 쓰면서 고생하면서 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좀 비판적인 생각을 한편으로 하기도 했었다. 또한 인터뷰를 마치고는 애초의 계획대로 한인 후손들의 선교를 후원하는 것이 교우들의 호응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사를 정리하면서 생각해 볼 수록 선교의 사명 앞에서도 민족 이기주의 적인 사고를 앞세운 것이 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유카탄의 한인은 몇 만 명 남짓하지만 마얀족들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멕시코 전체를 통털어100만명 정도라고하기도 한다. 우리 한인의 후예를 몇 명 복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얀족 선교를 지원하는 일은 자기 민족 마얀족100만명을 품에 안고 기도하며 선교할 미래의 바울과 같은 “초강력” 마얀족 선교사를 키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우리 단기 선교팀의 짧은 현지 여름 성경학교에서 미래의 무디와 같은 놀라운, 마얀족의 전도자가 키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어리석은 우리 사람의 셈과 하나님의 셈은 다른 것이니…

 

유카탄 선교 외에 북한 선교나 파인리치 선교에 관한 말씀도 해 주셨지만 지면 관계상 줄인다. 옥합에서는 기회가 닿는대로 이에 대해서는 따로 소개할 계획이다. 마얀족과 마야의 문명, 역사 과학기술 등에 대한 정보 및 영상 자료들은 전도위원회와의 협의 후 조만간 인터넷 옥합에 올릴 예정이다.